[매경춘추] "내 아들을 믿는다"

관리자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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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인가게는 5년 후면 회사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선친이 통인을 창업한 1924년에는 '양반'들은 이 땅에서 할 일이 없었다. 일제 치하에서 벼슬길이 막히고 '사농공상'에 갇혀 장사도 할 수 없었다. 안동 김씨 가문으로 한양(서울) 한복판에서 살아 온 우리 집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증조부와 조부는 일정한 직업 없이 집안에 내려오던 땅이나 세간살이를 팔아 가족을 먹여살렸다. 수대에 걸쳐 벼슬도 하고 양반으로 지내온 덕에 땅이며 도자기, 가구, 패물 등은 많았다.


어느 날 선친이 장터에 때 묻은 구슬을 지니고 갔는데 일본인 골동 수집가가 구슬을 팔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선친은 구슬뿐만 아니라 백자나 가구 등을 내다 팔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통인가구점'이란 가게를 냈다. 초기에는 집안의 골동을 내다 팔았지만 점차 거간(중간상)들이 가져오는 물건을 취급했다. 선친이 골동을 보는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열여섯 살 때부터 통인 점원이 돼 선친 밑에서 골동을 배웠다. 고등학생 때는 학교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골동을 보는 안목을 키우고 영어회화 공부에만 주력했다. 나는 삼형제의 막내로 형이 둘이나 있었다. 착실하게 공부해 은행원이 되겠다는 형들과 달리 나는 큰 장사꾼이 되겠다는 비전을 가졌다. 1970년 들어 조선 가구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해외 유명 백화점에서도 조선 가구를 찾았다. 선친은 골동 가구로는 수요를 충족할 수 없어 옛 가구를 똑같이 재현한 '되살림가구'를 만들어 팔았다. 수출량이 늘어나자 선친은 되살림가구 공장 용지를 물색해 구입했는데 공장 건설 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내가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이를 해결했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았다. 이 일 후로 아버지는 인사동에 통인가게 빌딩을 짓는 큰일을 나에게 맡겼다.


인사동 랜드마크가 된 7층짜리 통인 빌딩이 완성된 1974년 어느 날 선친이 사무실인 상광루로 나를 불렀다. 선친은 담담한 표정으로 "오늘부터 통인을 너에게 물려준다. 더 성공하여 큰 회사로 만들거라"하면서 통장과 도장을 통째로 건네주었다. 나는 형이 둘이나 있는데 아버지가 나를 후계로 선택한 것에 대해 깜짝 놀랐다.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야무진 각오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날 낮에 선친이 골동상 친구인 최 영감, 심 영감과 함께 점심을 했다고 한다. 두 영감이 아직 골동에 대한 안목도 부족한 막내에게 가게를 물려주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는데 선친은 "나는 내 아들을 믿는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버지가 나를 믿고 맡겨 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했고, 그 믿음에 부응해야겠다는 열망이 솟구쳐 올라 더욱 열심을 다해 사업에 몰두했다.


[김완규 통인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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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11/992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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