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기억을 깎아내고… 실로 꿰고… 이토록 다채로운 판화들

관리자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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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원 작가의 실크스크린 ‘겨울캠핑’(2018년). 일상의 행복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일관된 주제로 삼고 있다. 통인화랑 제공


미술과 가깝지 않은 사람들에게 판화의 이미지는 제한적이다. 초등학교 미술 수업 시간에 무딘 조각도로 단단한 목판에 힘들여 그림을 새기다가 손을 깊이 벤 아픈 기억부터 떠올리는 이도 있다. 2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인화랑에서 열리는 ‘해학의 풍경’전은 ‘마음먹은 대로 다채롭게 표현하기 힘든 방법’이라 여겼던 판화에 대한 시야를 확장해 주는 전시다.


40년 가까이 목판화 작업에 천착해 온 강행복 작가의 ‘화엄’은 판화 기법을 이용한 입체 설치 연작이다. 여러 문양의 목판을 무작위로 겹쳐 찍은 종이를 다시 비정형으로 재단해 흩뜨려 겹치고 실로 꿰매 고정했다. 강 작가는 “겹쳐 쌓음은 매 순간의 인연에 따라 달라진다. 우연과 필연의 만남이 어우러져 조형으로 완성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언정 정승원 작가는 현실 세계에서 끌어온 다양한 대상을 경쾌한 이미지로 조합한 실크스크린과 목판화를 선보였다. 이 작가의 ‘시티 강남’, ‘시티 천안’은 전통 건축물과 현대식 빌딩이 혼재한 가운데 각양각색의 옥탑방, 옥상주차장, 생뚱맞은 기념조형물이 더해진 한국의 도시 풍광을 한적하게 조망한다. 독일에서 공부한 정 작가는 맥주 양조장, 공원 등을 배경으로 일상의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커다란 한 컷 만화처럼 담아냈다.



민경아 작가는 현실과 가상, 진실과 거짓, 솔직함과 위선을 키워드로 작업한다. 아시아와 서구의 현재와 과거 이미지를 뒤섞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동그란 콧물방울이 아슬아슬하게 맺힌 피노키오의 코를 가진 인물의 뒤통수를 그린 리놀륨판화에는 ‘어차피 아무것도 없다고 그만 돌아가자는 얘기가 나올 때쯤’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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