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정승원의 행복한 판화

관리자
2021-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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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나뭇가지 위로 눈이 수북하게 쌓인 겨울 숲. 부부는 강아지와 함께 모닥불 앞에 앉아 불을 쬐고 있습니다. 뒤편으로 작은 통나무집이 보이고, 신이 난 아이들은 열심히 눈사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겨울이 화면 한가득 담겼는데 이보다 더 푸근할 수 있을까요. 정승원 판화가의 작품 ‘겨울캠핑’(2018)입니다.

정승원, '겨울캠핑', 실크스크린, [사진 정승원 작가]

정승원, '겨울캠핑', 실크스크린, [사진 정승원 작가]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열린 판화전 ‘해학의 풍경’이 지난 7일 폐막했습니다. 국내 판화계의 ‘숨은 고수’ 8명이 함께 준비한 귀한 자리였죠. 왜 그들이 숨은 고수냐고요? 이들이 남몰래 작업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이 중엔 생애 40~50년 이상을 작업하고 미국·일본·독일 유학을 했거나 판화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도 있습니다. 다양한 소재와 기법으로 실험을 해오고 있고요. 그런데도 국내에서 판화는 소외된 장르 중 하나로, 화랑가에서 덜 소개되고 있고 작가들은 노출될 기회가 매우 적은 게 현실입니다. 정작 전시장에 가보면 고수들이 꽤 있는데도 말이죠.

민경아, '서울. 범내려온다'. [사진 통인화랑]

민경아, '서울. 범내려온다'. [사진 통인화랑]

국제 판화계에서 인정받은 민경아(55) 작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이번 전시에 그는 ‘서울. 범내려온다’를 선보였습니다. 고층빌딩과 한옥 기와지붕이 즐비한 서울 풍경에 민화 속 호랑이를 등장시킨 작품입니다. 강렬한 명암의 대비, 왕관 쓴 호랑이의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호랑이 털 묘사가 압권입니다. 2018년 스페인 ‘온 페이퍼(ON PAPER) 국제판화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그는 상상과 현실을 조합한 화면에 한국적 해학을 새기는 작업으로 한국 판화의 오늘을 이끌고 있습니다.

반면 정승원의 실크스크린 작품은 부드러운 선과 오밀조밀한 화면 구성이 특징입니다. 그의 작품들은 대개 축제와 공원, 시장 풍경을 담고 있는데요, 한결같이 즐거움과 설렘이 가득한 분위기입니다. 작가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을 밝은 색채로 재구성한 풍경은 우리에게 ‘삶 그 자체가 소풍이며 축제’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정승원, 하회마을, [사진 정승원 작가]

정승원, 하회마을, [사진 정승원 작가]

10여년 간 독일 유학생활을 한 정승원 작품엔 이국적인 풍경이 두드러지지만, 그의 다른 대표작 안동 하회탈 시리즈는 작가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다수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화면엔 하회별신굿탈놀이 현장의 흥과 해학의 에너지가 그득합니다.

한국에서 판화가로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정승원 작가에게 판화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망설이지 않고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유화와 달리 색도 다채롭게 표현해볼 수 있고, 야광·발포물감 등으로 여러 효과를 실험해볼 수 있어 좋다”면서요. 들여다보니 판화의 세계도 무궁무진합니다. 판화가들은 “앞으로 판화 콘텐트가 훨씬 더 다양해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합니다. 시대가 변한만큼 판화도 진화하고 있습니다. 민경아·정승원 등 판화가들의 열정이 열어젖힐 새로운 판이 기대됩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출처: 중앙일보]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정승원의 행복한 판화 


기사원문: https://news.joins.com/article/23988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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