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통인화랑과 현대미술

관리자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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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누군가의 후원 없이 스스로 성장하기 힘든 특징이 있다. 15~16세기 피렌체공화국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에 르네상스 미술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거장의 작품들이 탄생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화가들은 당대에 평가를 받지 못하고 어려운 생활고에 시달리다 사후에 작품이 빛을 보는 경우가 허다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평가받는 반 고흐도 살아생전에는 작품을 인정받지 못하다 죽고 난 후 유작전에서 인정받았다.


우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970년대 중반 인사동의 랜드마크가 된 통인빌딩에 드나드는 화가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가난했다. 생활비는 물론 그림 그릴 재료값이 없어 고생하는 이들이 많았다. 나는 1974년 통인빌딩을 완공한 후 현대미술과 공예를 취급하는 통인화랑을 창업했다. 통인가게가 골동을 판매한다면 통인화랑은 현대미술을 취급하는 곳이다. 나는 통인화랑을 창업할 때 돈 벌 생각보다는 현대미술 화가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7층짜리 통인빌딩의 지하 1층과 5층을 통인화랑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 작가의 작품을 평균 일주일 전시하기 때문에 1년이면 52명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한다. 그러나 전시 판매가 잘 되는 편은 아니다. 작품이 팔리지 않아 임대 수익도 빠지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도리어 내가 작품을 사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통인화랑에서 전시한 현대미술 화가로는 박서보가 대표적이다. 박서보는 1975년 일본 도쿄화랑에서 권영우 서승원 허황 이동엽과 함께 '한국 5인의 흰색(백색)전'을 계기로 한국 현대미술 추상화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박서보는 '묘법' 화풍으로 첫 개인전을 1976년 통인화랑에서 열었다. 박서보 역시 시대를 앞서간 화가로 그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하다 2010년 이후 '단색화' 열풍이 불면서 지금은 호당 단가가 가장 비싼 인기 화가가 됐다. 이동엽도 통인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는데 당시 전시된 작품이 모두 팔려 전체 판을 두 번 바꾸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그는 생애 최초로 큰돈을 만져봤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송광익은 통인화랑이 후견인이 돼 해외전시 출품을 지원했으며 김구림 황성준 강경구 등 수많은 현대미술 화가들이 통인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통인화랑은 세계 정상급 해외 도예가의 초대전도 종종 열고 있다. 보딜 만츠, 피에트 슈토크만, 장 프랑수아즈, 고헤이 료지, 요시카와 마사미치, 필립 바트 등이 작품전을 가졌다.


나는 메디치 가문과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예술가를 돕고 싶은 마음만큼은 메디치 가문 못지않다. 더 많은 예술애호가들이 우리 예술인들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김완규 통인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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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12/1073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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