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골동과 포장이사

관리자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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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다.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내 삶 속에서 평생 이 말을 실감하며 주변 분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중학생 때 통인가게 점원으로 들어가 선친으로부터 골동 장사를 배운 이후 가게를 찾는 손님에게서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된 후 거의 매일 저녁식사를 하며 반주를 했다. 빈대떡에 막걸리 수준이었지만 단골손님이나 화가 소리꾼 글쟁이 등 각양각색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이들로부터 많이 배웠다. 선친은 나보다 한술 더 떴다. 내가 어쩌다가 집에 일찍 들어가면 오늘은 왜 일찍 들어오느냐고 한소리했다.


통인가게 단골손님 중 데이비드 록펠러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미국의 거물 금융인으로 당시 체이스맨해튼 은행 총재였다. 그가 1974년 4월 처음 방한했을 때 그를 학수고대한 이는 경제개발 외자 확보에 목을 빼던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골동 수집가인 록펠러는 이후 한 해 평균 두 번 방한했는데 그때마다 청와대 면담에 앞서 통인가게부터 찾았다. 한번은 금강산 민화 한 틀을 샀는데 그때가 세계적 수장 목록에 한국 민화가 드는 순간이었다. 록펠러는 우리 골동품을 갖고 나갈 때 포장과 운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에게 고급 포장과 국제운송 사업을 해 보라고 권유했다. 한국판 DHL 같은 것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포장 택배 회사를 만들려고 여러 번 추진하다가 대기업이 이 분야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사업을 접었다. 대신 골동품과 같은 귀중품의 포장과 운반이 필요한 분야를 대상으로 운송사업을 시작해 국제운송 전문인 '통인인터내셔날'을 창업했다. 수년 후 포장이사의 원조인 '통인익스프레스'도 창업했다. 이삿짐과 물류사업을 하다 보니 고객이 맡긴 물건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창고가 필요하게 됐다. 30년 전인 1980년대 후반에 '통인안전보관'이란 회사를 설립하게 됐다. 수요가 늘면서 창고와 물류기지가 필요해졌고 통인은 전국 여러 곳에 부동산을 많이 구입했다. 의도치 않게 통인안전보관 덕에 통인의 부동산 자산이 꽤 늘어났다. 이후 필요에 의해 보안업체인 통인안전보안, 그리고 문서 파쇄를 하는 통인파쇄컴퍼니 등도 창업했다.


[김완규 통인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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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12/1046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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