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통인가게 골동품 단골손님

관리자
2021-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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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80년대만 해도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고 싶을 때 딱히 마땅한 물건이 없었다. 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하거나, 군에서 별을 달거나, 결혼 회갑 등 의미 있는 선물에 도자나 고미술 등 골동품이 인기였다. 외국 대사들도 귀국할 때면 우리 골동품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가 하면 단순히 골동품을 보고 즐기며 수집하는 마니아도 많았다. 고려청자 이조백자 등 도자기 마니아도 있었고, 고미술 공예품 등을 주로 모으는 컬렉터도 있었다. 통인가게를 자주 들락거린 단골손님 중에는 대기업 오너와 사회적 명망가도 꽤 많았다.

통인가게 단골손님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분은 당시 성루가병원장이었던 수정 박병래다. 그는 매일 점심식사 후엔 어김없이 통인가게에 나타났다. 초대 성모병원 원장을 지낸 그는 의사 시절부터 봉급의 절반을 백자 구입에 썼을 정도다. 청화백자를 특히 좋아했던 그는 1974년 죽기 전 자신이 평생 모은 362점의 문화재를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개성상인 동원 이홍근은 인삼 장사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주로 고서화를 샀다. 현금을 갖고 다니지 않았던 그는 가게에 들러 탐나는 골동을 발견했을 땐 담배를 싼 은박지 속면에 지불금액을 적어 경리직원에게 전달토록 했다. 은박지가 일종의 개인수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동원도 평생 수집한 서화 등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는데 규모나 전시공간이 최대이다.

기업인으로는 호암 이병철(삼성 창업자)과 그의 며느리 홍라희(전 리움 관장)가 큰 단골이었다. 호암은 고려청자 이조백자 등 문화재급 도자기를 좋아했으며 골동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다. 호암은 마음에 드는 골동품을 대하면 20분 이상 뚫어지게 관찰하며 디테일을 보았다. 호암이 평생 모은 골동품은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을 세계적 반열에 올려놓는 데 주춧돌이 됐다.

한창기(전 뿌리깊은나무 발행인)는 거의 매일 가게에 들러 손님보다는 식구 같은 존재였다. 그는 도자나 서화보다는 민속공예품 수집에 관심이 많았다. 전남 벌교 출신인 그는 평생 모은 민속공예품을 순천시에 기증했는데 순천시가 그의 사후에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을 만들어 이곳에서 보관·전시하고 있다.

김상만(전 동아일보 회장)은 골동품을 수집할 뿐 아니라 진정으로 즐겼던 골동 애호가이다. 자주 통인가게에 들러 골동을 한참씩 들여다보고 신중하게 샀다. 그는 살림집이나 사무실에 도자와 고서화, 고가구 등을 두고 보는 즐거움(안복)을 누렸던 분으로 기억된다. 김종희(한화 창업자), 이원만(코오롱 창업자)을 비롯해 김활란(전 이화여대 총장), 허영환(전 성신여대 박물관장), 김종학(화가), 김환기(화가), 김수근(건축가), 정치인 이활·김종필·이후락 등도 빼놓을 수 없는 통인의 단골손님이었다.

[김완규 통인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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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원문: https://www.mk.co.kr/opinion/contributors/view/2019/12/102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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