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탈출! 통로를 만드는 남자 송광익편

관리자
202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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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통인화랑에서 화가 '송광익'을 보았다.


그의 박속같은 웃음에서 생전의 함석헌 선생님과 시인 구상 님의 표정이 교차한다. 그리고 돈벌이를 생각지 않고 살아가는 소수의 지구인들만 아는 생경한 청량감, 그 표정이 그의 얼굴에 교차된다.

그가 통인 화랑 전시장에 걸어 놓은 작품들은 그냥 그림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틈새가 보인다.


아니, 그의 작업이 바로 그 틈새를 만드는 일이다.


서걱거리는 한지를 베고 접어, 수많은 틈새를 만들고 이를 캔버스에 붙여 그 위에 색을 칠한다.

누구는 물방울만 그리고 소나무만 그려서 유명세를 탔다는데...


화가 송광익은 번잡한 지구 표면에 그저 '틈새'를 만드는 일에 집착했다.


..세상과 딱 그만큼의 거리를 두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렇게 그가 만든 틈새는 통로가 되었다.


과연, 어느 별로 통하는 통로일까?

2미터 거리를 두고 정면에서 그의 작품을 보면 때론 황량한 사막이, 때론 네온사인이 켜진 도시의 정글이 보인다. 그리고 벽에 얼굴을 댄 채 측면 20cm 거리에서 작품을 봤을 때, 그제야, 그의 틈새가 견고하고 곧게 뻗은 통로임을 깨닫게된다.

그 좁은 통로의 구멍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통로 끝에서 통쾌하게 웃고 있는 송광익을 마주하게된다. 마치 영화 ''쇼생크탈출'' 의 마지막 장면처럼, 그의 작품이 있는 인사동. 그 곳에는 어딜 가나 일년 내내 미술 전시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중 특별한 전시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콕 집어 '통인가게' 건물에 간다.

그 곳엔 '현상세계'를 탈피할 수 있는 작품 만을 선별해 전시하는 '통인 화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통인화랑'에 지금, 다른 별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가 열려있다. 바로 화가 송광익의 작품들 때문에.

''탈출! 지금 떠나야지요! 탈출!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지 않나요?''


그는 말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탈출은 쉽지않아 보인다.

 

 


그의 주 서식지인 대구 삼성창조캠퍼스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진짜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짜지요? 서울서 뵈야 될낀데, 그 먼길을... 미안 합니데이!"

그의 아내가 얼마 전 낙상으로 척추를 심하게 다쳤고, 가슴이 아닌 다리가 떨리는 아내의 간병때문에 그는 현재 전시 중인 '통인화랑'도 비워둔 채 대구에서 아내를 근접 간호 중이다. 당연히 탈출은 꿈도 못꿀 일!

젊었을 때, 아내는 약국에 종일 감방 살이 시켜 놓고 혼자 훨훨 날아다니더니, 결국 일흔이 넘어서야 덜미를 제대로 잡힌 듯하다.

"누구나 꿈꾸던 '샷다인생' 아입니까? 아침에 '약국샷다' 한 번 쫘악! 올리고, 저녁에 한 번 쫘악! 내리주믄. 인생 꽃놀이패 아이라요! 하하하. 그 카다가 말년에 요래요래.. 허, 참.."


차마 말끝을 못 맺는다.

1950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50여 년을 그림만 그리며 현실로부터 탈출하기를 꿈꿔왔다.


"사람이 사는 게 재미가 있어야 안됩니꺼. 권태로운 삶은 탈출해야지요. 20대 때, 사는것도 재미없고 마땅히 의미도 못찾고 뭐, 사는게 건조 했는기라요''

사학과에 입학한 그는 유물조사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자아를 찾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발견한 그는 거침없이 계명대 미술 대학에 재입학했다.


그는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림 말입니꺼? 이거 참 말 잼있습니데이. 시작 할 때 가슴도 막 뛰고, 끝날 때는 후끈합니데이. 작업할 때는 억수로 힘도 마이 들지만서도... 내가 와 이캤노.. 싶기도 허고..."

20대 때 시작한 화가의 길을 70이 훌쩍 넘도록 이어오면서, 문득 불가사의한 의혹도 하나 생겼단다.

'대체 다른 화가들은 무얼 먹고 살까?'

''아니... 억수로 궁금한 기라요. 지한테야, 야단은 치지만서도 끝까지 그카마 돈 내주는 아버지가 계셨고, 유학 핑계로 온 가족이 일본 가 살다 돌아올 정도로 돈도 있었고ᆢ. 또 마누라 약국 시켜놓고 남들 다 부럽다카는 ''샷다맨''으로 살았으이 겉보기엔 유유자적헌기라요. 그캐도삶이 참~칼칼한데... 그림만 내내 그리고 사는 사람은, 대체 우예 사냐 이말이니더''

그가 '샷다맨'으로, 고등학교 미술선생으로, 대학(진주여대) 교수로, 때론 강사로 살아오면서 동시에 화가라는 신분을 유지한다는 건, 그에게 짧은 다리로 기나 긴 징검다리를 뛰어 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하물며 그 많은 화가들은 어찌 밥먹고 언제 애키우고 허연 머리 날 때까지 견뎌 온 것일까?

하지만 "아무한테도 묻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가 만약 다른 화가에게 물었을 때, 욕 하면서도 돈 대주는 아버지도 없고, '샷다'만 올려주면 되는 약사 마누라도 없는 대다수의 화가들은 "나는 고흐처럼 살았다!" 라며 욕하듯 답 할거 아닌가. 그럴때, 철없는 송광익은 "아! '테오' 같은 동생이 돈을 대줬구나."


그리 말하다가 멱살을 잡힐지도 모르니 말이다.

 


천진한 표정으로 일흔을 훌쩍 넘게 살아온 화가 송광익. 그는 마치 미술을 마술이나 마약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다른세상으로 가는 통로를 여는 방법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데이. 이게, 중독되는 깁니더. 함 가보면 알지요. 마약 중독보다도 더 쎄다 아입니꺼."

마치 평생 '약쟁이'로 살아온 마약 중독자의 회고같은 느낌으로 미술을 표현했다.

'처음엔 마술처럼 훅! 들어오고, 가다보면 끈적한 판타지에 빠져들게 되면서 어느새 돌아갈 수 없는 곳까지 와버린 걸 알게 된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엔 아직도 창창히 저지를 것들을 담고 있음이 느껴진다.

"통인 화랑 사람들이 십 년 전인가.. 전속 작가를 허자케요. '잘 걸렸다!' 켔지요. 통인 가게 주인하고 통인 화랑 관장, 이들 부부가 대단한 '마피아' 아입니꺼. 미술이 마약이믄 통인 부부는 세계적인 마약상이 확실한 기니까요!"라고 말하는 그의 추정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통인 부부는 록펠러재단의 ''데이빗 록펠러''를 직접 만나 한국 작품을 팔아온 최초의 한국인이자 현재까지도 독보적인 거래선으로 서로를 인정하는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종합해보면, 화가 송광익은 지금 잘 익은 '마약'을 만들고 '통인화랑' 이라는 '빅패밀리'와 밀월 중 이라는 건데, 그가 만든 작품의 순도를 알아 본 '통인 패밀리'는 또 대체, 무슨 배짱인걸까?

"40회 이상의 전시회를 국내 외에서 전개했던 역량은 물론이고, 유달리 배타적인 일본 화단에서의 수상 경력은 단연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지요. 특히 기타큐슈비엔날레의 수상과 후쿠오카 뮤지엄 전시에서의 수상은 아주 특별히 작가의 위상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습니다. 그런 영향으로 금복문화재단의 수상도 결정됐다고 봅니다. 미술작품은 마술피리 같은 거라서, 불면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음을 꺼주거든요. 집중하게해 주지요. 송작가의 작품은 기관총에 부착해도 좋을만큼 특별한 소음기수준 입니다."

 

통인화랑 관장 (이계선 )의 코멘트다. 역시.. '빅패밀리'는 무엇을 하든 절대 남발하지 않는다.

20대에 그림을 시작해 70대를 훌쩍 넘긴 화가 송광익은 그 동안 오백여 점의 작품을 그렸다. 그리고 지금 자신에게 남은 건 백여점 정도. 결국 사백여 점은 누군가 소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소장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순간, 자신의 작품이 탈출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치 영화 '빠삐용'에서처럼 미련 없이 몸을 던질 수 있는 그런 탈출구 말이다.

그래서, 그는 아주 가끔 자기 그림을 만나면 깜짝 놀라며 좋아하다가, 또 울컥하다가 급기야 울어버리게 된다.


그 작품 속에서 통로 반대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과거의 송광익을 정면으로 마주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작품에는 영화 '쇼생크 탈출' 포스터 속 환희만 있는 게 아니라, 절벽에서 일곱번 째 파도를 기다리다 몸을 던지는 '빠삐용'의 두려움도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겁 먹은 빠삐용을 탈출시킬 일곱번 째 파도를 세고 있는 것이다.하나. 둘, 셋,넷...

화가송광익은 알고 있다!

'쇼생크탈출'은 우연히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걸.


[오치우의 인물채집] 탈출! 통로를 만드는 남자 송광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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